음악 소리가 들린다. 온 몸에 은칠을 한 젊은이가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 주변에 빙 둘러선 구경꾼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지나가던 행인을 잡아끌어 그의 퍼포먼스 안으로 초대한다. 얼떨결에 코꿰인 행인과 행위예술가, 그리고 관람자도 모두가 깔깔대며 시선을 뗄 줄 모른다.
웃긴다. 중년을 살면서 누군가의 몸짓에 포복절도 해 본날이 있었던가? 세상 풍파에 닳고닳아 새로울 것이 없는 인간관계에서 잠시나마 걱정 근심을 잊었다. 이 댄서의 정체가 궁금하다. 공연이 끝나고 잠시 틈을 내었다. 이름은 조대호, 별명은 양철인간. 입대를 몇 번 미룬 22세의 행위예술가이면서 대구에서 활동하는 마임 댄서라고 한다.
몇 마디 나누는 와중에도 팬들이 계속 몰려와 사인을 요구한다. 필자에게 중학생 또래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건다. 양철인간의 공연이 너무 재미있단다. 두어 달 간격으로 볼 수 있는데 오늘 운이 좋았다고 한다. 양철인간의 광팬이라 그의 공연소식만 들리면 무조건 달려온다고 자랑을 한다.
즉석에서 몇 마디 나눠보니 대구 MBC와 JTBC 방송에서도 취재를 했들 정도로 나름 인지도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팬들에 휩싸여 짬이 나지를 않기에 추후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춤꾼은 태가 다르다. 무심히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분위기가 살아난다. 눈빛 연기를 바로 코 앞에서 접해보니 그 느낌이 배가 된다. 인터뷰는 건대에서 진행했는데 현재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근처의 댄서들과 교류를 위해 상경했고 지금은 친구의 집에서 며칠 머물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일은 진심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처음 만난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기초생활수급자 임을 거리낌없이 밝힌다. 아마도 이런 솔직함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의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일 터이다. 원하는 바가 순수하고 꾸밈이 없다.
뭐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바로 나온 말이 초밥. 고팠구나. 젊은날의 필자가 겹쳐진다. 콕 집어서 얘기한다. 딸기 쉐이크가 먹고 싶어요. 테이크 아웃 2잔을 들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프로필 사진을 몇장 촬영했다. 모델이 열 일 한다. 특별히 요구하는 포즈나 지시하는 말이 없이 걸으면서 자연스레 대화를 하다 보니 한 컷 한 컷이 예술이다.
양철인간은 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주로 혼자서 활동하지만 이벤트가 있으면 금칠인간과 콤비를 이루어 마임 댄스를 보여준다고 한다. 팀 이름은 명도. 밝은길을 가자는 뜻이다. 그가 거리 예술을 하게 된 계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을 주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우울증에 빠진 아주머니가 그의 그의 퍼포먼스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나서다. 자폐아가 자신의 댄스에 반응을 하는 것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필드 하키를 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고 백제 예술대에서 무용을 전공했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 세상에 이름을 날리면서 언젠가는 모델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오라가 남다르다. 188cm의 훤칠한 키에 댄스로 다져진 군살 없는 몸매. 체중이 59kg에 불과하다. 식스팩과 대흉근이 멋드러진 마임러. 짜리몽땅 필자와 같은 자리에 서니 비교불허다.
서울에는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올라와서 버스킹을 한다고 했다. 자주 가는 곳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홍대와 건대입구 라고 한다. 주 활동 무대는 현재 살고 있는 대구의 동성로다. 서울에 자리잡기에는 경쟁이 치열하고 거리도 멀 뿐만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여의치 않다고 한다. 버스킹의 특성상 지자체의 허가를 맡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공연을 펼치면 그 자리의 누군가는 밀려나야 할 수도 있으므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단다.
오는 9일과 10일에 남이섬에서 '춘천마임백씬; 100Scene Project'에 명도(양철인간&골든보이) 팀이 출연할 예정이다. BTS나 싸이, 이날치, 악단광칠, 이희문 처럼 양철인간 조대호도 유명세를 타게 될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짧은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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